이와미긴잔 세계유산센터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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은 채굴에서 정련까지의 기술

이와미긴잔 유적이 세계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, 16세기에 이미 환경을 고려하여 자연과 공생하는 광산 운영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. 이와미긴잔에서 이루어지는 은의 채굴에서 정련까지의 작업은 모두 인력·수작업·소규모였으며, 연료를 확보하기 위해 나무를 심는 등 현지의 자연이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었습니다.이와미긴잔 유적이 세계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, 16세기에 이미 환경을 고려하여 자연과 공생하는 광산 운영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. 이와미긴잔에서 이루어지는 은의 채굴에서 정련까지의 작업은 모두 인력·수작업·소규모였으며, 연료를 확보하기 위해 나무를 심는 등 현지의 자연이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었습니다.

이와미긴잔 광산도해(石見銀山鉱山図解,나카무라 토시로(中村俊郎)  소장)
이와미긴잔 광산도해(石見銀山鉱山図解,나카무라 토시로(中村俊郎) 소장)

조사를 통해 은을 캤던 자리(마부(間歩))는 약 600곳이 발견되었습니다. 그 중 대표적인 곳이 류겐지마부이며, 이와미긴잔 은광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내부를 견학할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. 그러나 견학할 수 있는 곳은 아주 일부분이며 그 안쪽에 개미집처럼 파여 있는 갱도는 볼 수 없습니다. 여기서는 에마키(絵巻,두루마리 그림)를 근거로 당시의 은 채굴 모습을 살펴보기로 합니다.조사를 통해 은을 캤던 자리(마부(間歩))는 약 600곳이 발견되었습니다. 그 중 대표적인 곳이 류겐지마부이며, 이와미긴잔 은광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내부를 견학할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. 그러나 견학할 수 있는 곳은 아주 일부분이며 그 안쪽에 개미집처럼 파여 있는 갱도는 볼 수 없습니다. 여기서는 에마키(絵巻,두루마리 그림)를 근거로 당시의 은 채굴 모습을 살펴보기로 합니다.

류겐지마부
류겐지마부

가네호리(銀掘,은을 캐는 사람)가 마부 안에 들어가는 장면
가네호리(銀掘,은을 캐는 사람)가 마부 안에 들어가는 장면

[캐다]

[마부(間歩)]라고 불리는 갱도 안은 어둠의 세계입니다. 조명은 소라 껍데기에 기름을 넣고 거기에 불을 붙인 것을 사용하였습니다. 1858년의 기록에는 주야 2교대제로 39명의 인부가 은을 캤다고 합니다. 은을 캐는 사람인[가네호리(銀掘)]가 24명, 채굴을 돕는 10세 전후의 아이인[데고(手子)]가 10명, 불필요한 돌을 옮기는 인부가 5명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.

에도시대의 채굴 도구
에도시대의 채굴 도구
캐다

[물을 퍼내다]

지하 깊숙히 땅속을 파내려 가면 용수가 나옵니다. 이것을 퍼내는 데도 사람 힘이 필요합니다. 목제 펌프 같은 것을 사용하였습니다.

물을 퍼내다

[공기를 불어넣다]

갱도 안에서는 환기가 나빠 병에 걸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. 그때운에 30세가 되면 장수를 축하했다고 전해집니다.

공기를 불어넣다

[운반하다]

운반하는 일은[가라야마오이(柄山負)]라고 불렸습니다. 주운 돌을 모아서 좁은 갱도를 등지고 바깥으로 나왔습니다.

운반하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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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은 채굴에서 정련까지의 기술
  • 은의 정련-회취법(灰吹法)-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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